내가 외국에 갔을 때에 산에 불이 나서 다 탔습니다.
거기는 나무 좋은 것이 많았었습니다.
듬성듬성 좋은 소나무가 많았었습니다.
그 중 한 나무가 내가 처음 기도했던 나무입니다.
그 나무도 홀랑 탔었는데 그 나무를 베려고 했더니 예수님께서 깨닫게 해주기를
“이것은 불타서 끄슬러 있어도 없어질 때까지는 기념이 된다” 하셨습니다.
살아난다는 소리 안하고 그렇게 하시더라구요.
그 때는 속이 상해서 싹 베려고 했었는데 그랬습니다.
다른 나무는 조급하게 다 베어 버렸습니다.
혹시 봄이 와보면 살았을지도 모릅니다.
처음 기도했던 나무는 안 베었는데 다시 살아났고,
“내가 언제 불 맞은 적이 있느냐?”하고 있습니다.
그래서 그 나무가 그 산에서 무슨 나무로 남았는지 압니까?
한번 맞추어 보십시오.
불과 상극인 것이 있습니다.
길거리 지나다 보면 많습니다.
이렇게 애를 먹여야 진리 때문에 애먹은 것을 깨닫습니다.
두 글자입니다.
교수고 누구이고 모릅니다.
‘해’자가 들어갑니다.
그 나무는 그것으로 판정되었습니다.
동물 중에서 공룡 같은 신비한 동물에 속하는 것이 있습니다.
맞습니다. 해태라는 것입니다.
해태는 불을 먹습니다.
머리에 쥐가 나게 하면서 해야합니다.
그 나무를 해태라고 하는 것입니다.
그 나무가 살은 것이 기적이라고 했더니 그 나무가 하는 말이
“한번 불이 나서 올라오는데, 정말 도망갈 수도 없고 미치겠었습니다.
그래서 선생님을 불렀지요. 나 좀 빼내 달라구요”
했습니다.
그런데 나무가 한쪽만 끄슬르고 나머지는 무사했습니다.
그래서 그 나무를 해태라고 명칭을 붙였습니다.
-1998년 7월 2일 아침말씀 中